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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은 쇠머리, 사골, 도가니를 비롯하여 뼈, 사태고기, 양지머리, 내장 등을 넣고 10시간 넘게 푹 끓인 음식이다. 설렁탕에 뼈에서 우러나온 흰색의 콜로이드가 놀아 있기 때문에 국물이 우유빛을 띤다. 그래서 식민지 시기 신문 자료중에는 설렁탕을 '설농탕'이가 표기한다. 국물 색이 마치 눈과 같이 희면서 맛이 진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런데 여기서 설렁탕의 유래는 크게 두개로 나눌수 있다. 하나는 조선시대 임금이 선농제를 지내고 직접 농사 시범을 보이던 장소인 선농단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두루 알려진 이야기 1940년 홍선표가 출간한 '조선요리학'에 나온것 이외 조선시대에 설렁탕에 대한 문헌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원나라때 몽골인 음식인 '수류' 혹은 '슐루'가 고려에 전해졌는데, 그 말이 변해서 설렁탕이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징기스칸 시대에 이 말은'맛있는 고깃국'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 두가지 추즉성은 모두 그저 설렁탕에 대한 추측성이라는 말이 많다.
설렁탕이 만들어진 배경은 박제가의 '북학의 내편.우' 라는 기록에서 알수있다. 한국에서는 날마다 소를 500마리를 나라의 제사나 호궤에 쓰기 위해 잡는다. 더불어 반촌과 한양 5부의 24개 가게를 비롯해, 300여 고을에도 반드시 가게를 연다 라 적혔다. 기록으로 보면 아마도 각종 제사에 사용할 소고기를 제외한 나머지 부산물ㅇ르 설렁탕을 만드는ㄴ 데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 문헌에서는 고기를 삶은 국을' 육즉'이라고 적었다. 고려 말부터 고기를 다루었던 반인이나 궁중의 조리사들 사이에서 이 육즙을' 설넝'이라고 부렀을 가능성이 있다.
20세기 초반 조선은 일본의 지식 가운데 설렁탕을 '쇠머리 스프'라고 적었다. 조선만화라는 기록에서는 쇠머리 스프는 정말로 좋은 것으로, 닭고기 스프나 우유에 그에 미칠 바가 아니라고 한다, 라고 기록 되어있다. 큰 솥은 일년 내내 걸어놓으며, 바닥까지 아주 깨끗이 씻는 일도 없다. 매일매일 뼈를 교체하고 물을 더 부어서 끓여낸다. 이국물, 즉 스프는 아주 잘 끓여낸 것으로, 매일 연속해서 끓이기 때문에 여른에도 상하는 일이 없으며, 이것을 정제하면 분명 세계 어느 것과도 비견할 수 없는 자양품이 된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지금 쇠모르 스프를 병에 담아 한국 특규의 수출품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조선만화에 적혀있다.
이렇게 맛있는 설렁탕은 아마도 1990년 이전 부터 서울 종로 뒷골목에 설렁탕집이 여럿 있었을 것이다. 김두한의 육성고백에 의하면, 형평사 부회장을 하던 원씨 성을 가진 노인이 1930년대 서울 종로 3가 단성사 옆에 설렁탕집을 했다고 한다. 당시 설렁탕 집은 형편사를 조직해 천민해방운동을 벌인 백정들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백정들은 근대 도시 중심가로 진출해 정육점을 직접 운영하면서, 정육점에서 나온 부산물로 설렁탕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값싼 설렁탕은 점차 서민들이 애용하는 음식이 되었다.
당시 설렁탕집에서는 중국 산둥 출신의 화교들이 운영하던 중국 음식점에서 파를 넣어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는 것을 보고 설렁탕 국물에 파를 양념처럼 넣었다. 그리고는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그위에 굵은 고춧가를 뿌린 뒤 식은 밥을 넣어 국밥으로 만들어 냈다. 당시 한양 양반들은 도대체 이것을 음식으로 먹어야할지 당황스러워 했다. 소금을 그대로 음식에 뿌리지는 않았다. 당시 한양사람들은 간을 맞추는데 집에서 담근 간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양반은 백정이 운영하는 설렁탕집에 직접 가서 먹으면 천민과 어울리는 꼴이 되니 설렁탕집에 가기 민망스러워 했다. 결국 설렁탕 집을 가기보다 집에서 배달을 시켜 먹는 것이 이런저런 걱정을 없애는 방법이 되었다. 이때 음식 배달부가 등장한다. 중국인들이 식당에 직접 가지 않고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모습을 보고서 설렁탕도 똑같은 방식으로 배달 시켜 집에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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